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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장애인거주시설 사회복지사들은 80% 이상 여성이다. 남성 비중을 늘리면 좋겠지만 최저임금에 준하는 급여에 비해 노동강도가 세고, 근무시간이 긴 탓에 지원자가 별로 없다.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돌봄이 취업시장의 주변부로 밀려난 중장년 여성이라는 또 다른 약자에게 맡겨지는 ‘웃픈 현실’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김보영 | 사회복지사
나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만 60살 이하 청장년층 남자 중증장애인을 돌본다. 내가 근무하는 시설에는 1실 평균 7명씩, 모두 15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용인의 장애형태는 거동할 수 없어 누워지내는 경우부터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거나 지적능력이 4, 5살 정도인 경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모두 4살 아기 돌보듯 24시간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는 건 같다.
주간근무일 때는 아침 9시에 출근한다. 출근하면 지난밤 근무자에게 인수인계를 받고, 곧바로 오전 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산책, 물리치료, 퍼즐맞추기 등 개인별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나면 간식시간이 돌아오는데 장애형태에 따라 먹기 좋게 과일을 갈고 다지고, 먹이다 보면 시간이 빠듯하다. 그런 다음 약 복용을 돕고, 점심을 준비한다. 배식해주는 담당자가 따로 없으니 각 방 담당 복지사들은 직접 식당에서 7명분 점심을 수레에 실어 방까지 가져와야 한다. 7인분 밥과 국, 반찬을 담은 냄비 대여섯 개를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게 가져온 식사는 삼킴이 힘든 이용인을 위해 직접 하나하나 잘라주거나 떠먹여 줘야 하는데, 혼자서 성인 일곱명 밥을 동시에 먹이는 일은 역시나 힘에 부친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다시 잔반을 정리해 수레에 싣고 식당까지 가져다주면 점심시간이 끝난다. 그다음부터는 아침에 출근해 진행했던 순서대로 다시 재활 프로그램과 간식 배식, 약 복용과 저녁식사 먹이기까지 반복하고, 오후 6시 야간근무자에게 인수인계하면 일과가 끝난다.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아침 9시까지 야간업무는 이용인 목욕부터 시작한다. 한명 한명 샤워실로 이동시킨 뒤 머리를 감기고 면도까지 일일이 도와주다 보면 온몸의 진이 다 빠진다. 씻기기가 끝나면 기저귀를 갈아주고, 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오후 9시가 취침 시간이지만, 모든 이용인이 잠드는 시간은 대략 밤 11시다. 이후로도 편히 쉴 수는 없다. 중증장애인이 대부분인 이용인들이 밤새 잘 자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내가 이곳에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다른 방에서 20대 이용인이 밤사이 갑작스럽게 사망한 일이 있었다.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119구급대원이 도착해 당사자를 병원으로 이송하고 경찰이 사망원인을 조사하게 된다. 근무자도 당연히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다. 당시 사고는 수면 중 자연질식사로 판명돼 근무자 과실이 없다는 결론이 났지만, 자신이 돌보던 이용인이 사망했다는 사실에 근무자는 한동안 자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나 또한 야간근무 때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이렇게 주간과 야간업무를 모든 복지사가 ‘주주야휴’ 2교대로 근무하고 있는데, 수시로 뒤바뀌는 낮밤근무와 노동강도를 생각하면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인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 힘든 건, 여성 사회복지사로서 성인 남자 이용인의 모든 것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목욕부터 기저귀 교체, 화장실 이용 뒤처리까지 여자인 내가 혼자 해내기란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힘들 수밖에 없다. 한번은 물리치료와 병원진료를 앞두고 시간이 촉박해 장갑 낄 새도 없이 급하게 기저귀를 갈아 채웠는데, 집에 가서 보니 손톱 밑에 변이 끼어 있었던 적도 있다.
시설에서 돌봄은 요양보호사가 하는 경우도 많지만, 사회복지법 적용 대상 사회복지시설이나 법인은 사회복지사가 담당한다. 단순 돌봄에 재활 관련 프로그램과 교육까지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장애인거주시설 사회복지사들은 80% 이상 여성이다. 남성 복지사 비중을 늘리면 좋겠지만 최저임금에 준하는 급여에 비해 노동강도가 세고, 근무시간이 긴 탓에 지원자가 별로 없다. 입사해도 얼마 안 돼 그만두곤 한다. 결국 경력 단절이 됐거나, 뒤늦게 생업 전선에 뛰어든 중년의 여성 사회복지사들이 자리를 채우게 된다.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돌봄이 취업시장의 주변부로 밀려난 중장년 여성이라는 또 다른 약자에게 맡겨지는 ‘웃픈 현실’이다.
세상은 장애인 거주시설의 복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들을 돌보는 이들의 인권과 복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곳에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그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사도 있다는 사실을.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